[뉴스 포커스] ‘인종차별 발언’은 정치 게임 후유증
LA시의회가 기능 정지 상태에 빠졌다. 라틴계 시의원 3명의 ‘인종차별 발언’이 담긴 녹음이 공개되면서다. 시의장 대행이던 누리 마르티네즈 시의원은 사임했고, 케빈 드레온, 길 세디오 의원에 대한 사임 요구 여론도 거세다. 더구나 발언의 직접 피해자도 동료 시의원이다 보니 회의 진행조차 힘든 처지에 놓였다. 가뜩이나 시의원들의 잇따른 부패사건 연루로 체면을 구긴 시의회가 위기 상황을 맞은 것이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해 10월 선거구 재조정 작업 중에 있었다. LA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재조정 위원회 회의 후 문제의 시의원 3명과 론 헤레라 전 LA카운티노조연맹 회장(이번 사태로 역시 사임)은 맥아더 파크 인근 노조연맹 본부 사무실에서 별도 모임을 가졌다. 여기서 마르티네즈 의원은 동료 시의원인 마이크 보닌의 흑인 입양 아들을 ‘작은 원숭이(little monkey)’로, 멕시코 오하카(oxaca) 출신 주민을 ‘키 작고 얼굴이 까만 사람’이라고 비하했다. 또 유대계와 아르메니아계에 대해서도 거친 표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드레온 시의원 또한 보닌 시의원과 그의 아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고, 세디오 시의원은 “직접적인 비하 발언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2019년 시의원에 당선된 마르티네즈는 사실 주목받는 정치인이었다. LA토박이로 비록 대행이었지만 라틴계 여성 최초로 시의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초심을 잃고 지나치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집착하다 모든 것을 잃은 꼴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처럼 많은 인종에 적대감을 보였을까? 답은 선거구 재조정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10년마다 이뤄지는 선거구 재조정은 시의원은 물론 모든 선출직 정치인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선거구가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본인의 정치 생명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LA시처럼 인종적으로 다양한 지역에서는 지역구 내 인종 분포가 본인의 당락에 큰 변수가 된다. 당시 한인사회도 ‘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를 위해 TF까지 만들며 무진 애를 썼던 것이 이런 배경이다. 한인표가모이면 한인타운 관련 이슈에 대해 더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라틴계 시의원들의 불만이 많았다는 분석이다. 즉, LA시의 라틴계 인구 숫자에 비해 시의원 비율이 너무 낮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 따라서 정치 구도를 바꾸기 위해 라틴계 표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선거구 재조정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LA시의 인구 구성을 보면 라틴계가 주류다. 2020년 ACS(America Community Survey)의 결과에 따르면 LA시의 인구는 390만여 명. 이중 라틴계가 전체의 48%를 차지한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셈이다. 이어 백인이 28%로 두 번째로 많다. 다음은 아시안 12%, 흑인 9% 등의 순이다. 하지만 LA시의원의 인종 구성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체 15명의 시의원 가운데 라틴계 시의원 숫자는 3분1도 안된다. 반면 흑인 시의원 숫자는 10지구 시의원 대행인 해더 허트를 포함해 3명이나 된다. 인구보다 시의원 비율이 훨씬 높다. 결국 이번 사태는 LA시의회 내 커뮤니티 간 정치 파워 게임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1년 전 일을 왜 이제야, 그것도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공개했을까? 또 누가, 어떤 목적으로 녹음까지 했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 LA시 정치권의 이면을 본 것 같아 씁쓸하다. 겉으로는 ‘시의 일꾼’을 자처하지만 뒤로는 본인의 당선이 최우선 목표고, 이를 위해 정책보다는 인종적 표심에 의지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내달 중간선거부터 유권자들이 더 현명해져야 하는 이유다. 김동필 / 논설 실장뉴스 포커스 인종차별 후유증 인종차별 발언 라틴계 시의원 세디오 시의원